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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of Nepal (네팔 개요) 


1. 지리적 위치 


히말라야 산맥 중앙부의 남반(南半)을 차지. 동서 850km, 남북 200km의 동서로 긴 국토를 이루며, 북쪽으로 중국(티베트 자치구)와 접하고, 동·남·서쪽은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 

자연지리학적으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산악지대, 언덕지대,  그리고 습지대로 나뉜다. 

동쪽 산악지대에는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칸첸중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등 8,000m 급의 고봉이 있다. 

전 국토 중 경지는 17%, 초원은 15%이며, 산림지대 42%이다. 


(상식: 에베레스트 8848m, 백두산 2744m, 남산 262m) 


2. 일반 


- 국명: 네팔왕국(Kingdom of Nepal) 


- 면적: 14만 7천㎢ (남한의 1.5배) 


- 인구: 2,642만 명(2007년) 


- 수도: 카트만두 (인구 70만명) 


- 민족: 아리안족 (80%), 티벳· 몽고족 (17%), 기타 (3%)  총 80여 종족 


- 언어: 네팔어(공용어) 외 100여개 (지식층 영어 구사) 


- 종교: 힌두교(88%), 라마불교(7%), 이슬람교(3%), 기독교 (2%) 


- 정치: 민주공화정 


- G.N.P: 297$ (대부분 관광 수입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음) 


- 시차: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늦다. (한국이 11:15분 일 때, 네팔은 08:00) 


- 통화: 네팔 루피(NRs) 


        1, 2, 5, 10, 20, 25, 50, 100, 500, 1000루피 지폐가 있다. 


        20, 50, 100루피가 많이 쓰인다. 


- 환율: 1달러(1200원)= 83NRs (2012년 5월) 

         12,000원= 10달러=830루피

         대략 10,000원은 700루피,100루피는 우리 돈 1,500원 정도


- 전압: 220볼트, 50Hz, 3P콘센트 (한국에서 가져온 그대로 사용) 


- 문맹율: 46%, 초등교육 5년 무상교육 (의무교육은 아님) 


- 극빈층 인구 비율 : 31% 


- 평균 가족 수: 5.44명 


- 방송: TV 방송국 3개, 라디오 방송국 3개 


- 전화: 한국으로의 전화 


호텔에서: 0또는 9번(호텔마다 다름)+00+82+0을 뺀 지역번호+전화번호 


공항 또는 공중전화: 00+82+0을 뺀 지역번호+전화번호 


3. 네팔의 국기 


세계에서 사각형이 아닌 유일한 국기이다. 


삼각형 2개를 포개놓은 형태에 테두리 선은 진한 파랑이며, 빨강 바탕에 하양 초승달과 태양이 있다.

 파랑은 세계를, 빨강은 행운을, 12개의 광선이 뻗쳐 나오는 달은 왕실과 평화를, 태양은 수상 일가와 힘을 나타내며,

 전체적으로는 ‘달과 태양과 같이 국가가 길이 번영하라’는 염원을 나타낸다. 원래는 2개 삼각형이 서로 붙어있지 않았는데 18세기 초에 결합되었고, 달과 태양도 사람 얼굴 모습이었는데 1962년 현재의 형태로 바뀌었다. 


4. 환경 


 네팔의 지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4개의 지대로 나누어진다. 인도 국경을 따라 펼쳐져 있는 타라이 평원,

 산림으로 덮인 추리아 산기슭과 북쪽의 내(內)타라이 지대, 산간지역, 대(大)히말라야 산맥이 여기에 속한다. 


타라이 평원은 고도가 낮고(해발 180~360m), 평평하고 기름진 곳으로 너비 26~32kmrkfid 되는 갠지스 평원 북쪽과 연결되어 있다. 


 남쪽은 농업지역인데 산과 만나는 지점은 숲이 우거진 습지이다.


 추리아 구릉과 내(內)타라이 지대는 사람이 얼마 살지 않으며 험준한 마하바라트 산맥을 중심으로 해발고도가 600~9,100m까지 이른다. 


 산간 분지에는 숲이 우거져 있다. 

해발 2,400~4,300m에 이르는 산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바하마티 강이 흘러드는 카트만두 강과 세타 강이 흘러드는 포카라 강 유역의 평평한 지대는 이들 산계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카트만두 강 유역은 네팔의 정치·문화 중심지이다. 


 해발고도 4,300~8,800m인 대히말라야 산지에는 8,040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 (에베레스트, 칸첸중가 1봉, 마칼루 1봉, 초오요, 다울라기리 1봉, 마나슬루 1봉, 안나푸르나 1봉)이 있으며 에베레스트 산(8,848m)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5. 기후 


 네팔의 기후는 타라이 지역의 아열대 몬순기후에서부터 대히말라야 산맥의 고산기후까지 여러 층이다. 


연 강수량은 타라이 동쪽이 1,800~1,900mm, 네팔 서부가 760~890mm이다. 

몬순계절(7~10월 중순)동안 타라이 평원의 낮은 지대에서는 홍수가 심각한 문제이다. 


 네팔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 가운데 하나는 국토의 약 1/6을 덮고 있는 넒은 숲으로 목재와 땔감,

 의약용 약초를 제공해 준다. 

호랑이· 표범· 사슴· 원숭이와 얼마 되지 않는 인도 코뿔소의 은신처가 되고 있다. 

해발 고도가 1,200m이상 되는 지대에는 상록수와 낙엽수(참나무· 단풍나무· 목련)가 자라며 히말라야 산맥 중앙 비탈면에서는 표범과 곰 종류도 가끔 나타난다. 

고도가 높은 아(亞)고산 및 고산 초원지대에는 사향노루와 야생양이 서식한다. 


 전형적인 몬순 기후로 두 가지 계절이 번갈아 이어진다.

 건기는 10월에서 5월까지 이며 6월에서 9월까지는 우기. 극한대(북부지역의 만년설이 있는 고원지대), 온대 (보통기후), 아열대 (남부 평원지대)로 나뉜다. 


소망복지타운을 아열대에 위치. 


 히말라야 설산의 눈부신 파노라마를 보려면 11월~2월 사이에 트레킹을 하는 것이 좋으나 이 시기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므로 추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의 히말라야는 푸른 녹음과 온갖 꽃들이 피어나므로 휴식을 위한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으며, 일년 내내 여행하기에 알맞다. 

6월~ 9월까지 4개월의 우기 동안 1년 강수량의 80%가 내린다.


 네팔은 사계절 모두 여행의 별미가 있으므로 계절에 맞는 준비물을 챙기면 여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 


 카트만두는 해발 1,300m~ 1,400m 고지대의 분지로 이루어져 있어 4월~ 9월에는 연평균 최고기온이 27도~28도 이고,

 12월~ 2월 기온은 17도~ 19도 정도 이다. 


건기인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는 밤과 낮의 기온차가 매우 심하고 우기인 7월부터 8월까지는 몬순기후로 폭우로 인한 피해가 많다.

 가장 추운 1월에도 최저 기온이 2도 정도이다. 



포카라는 네팔의 중앙에 위치하며 해발 850m의 도시이다. 

1월을 제외하고는 평균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고 4월~ 9월 반년은 평균 28도 정도 이다. 연중 추운 지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산악지를 제외하고 겨울에도 0도 이상의 기온을 유지한다. 


6. 국민 


 초기 정착은 티베트에 살고 있던 몽골계와 인도 북쪽의 인도아리아계 종족이 대규모로 옮겨오면서 이루어졌다.

 인도아리아족 혈통을 이어받은 주민이 전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요 소수민족은 티베트계 네팔인이다. 


산스크리트에서 갈라져 나온 네팔어가 공식 언어이고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는 네와리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도 많이 쓴다. 


 인구의 2/5가 15세 미만이다. 국민들 대부분이 시골 지역에 살며 도시 인구는 거의 카트만두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는 교통과 통신 서비스 개선, 지역개발 사업을 통해 타라이 지역의 높은 인구밀도를 줄이는 한편 농촌에 소규모 산업시설을 세워 새로운 도시구역으로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7. 의복 


스웨터나 윈드 재킷은 필수이다.

히말라야 산중에 갈 때에는 나름대로의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밖의 지역이라 해도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여 밤에 입을 스웨터나 윈드 재킷을 준비해야 된다. 네팔에는 좋은 울로 만든 스웨터나 의복이 많고 매우 가격이 저렴하므로 현지에서 구입하는 편이 좋다. 


 우산은 우기가 아니라도 햇볕을 가리는 양산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간단한 상비약과 위생용품, 화장지, 기관지 보호용 캔디나 껌 같은 것도 필요하다. 


8. 동식물 


 6,500종 이상의 나무, 관목, 야생화들이 있다. 

모든 식물이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는 3,4월이 되면 네팔의 국화인 진달래가 활짝 꽃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 생태계도 놀랄 만큼 다양해서 800여종 조류와 벵갈 호랑이나 구름표범(snow leopard)같은 이국적인 포유동물,

 코뿔소, 코끼리, 곰, 사슴, 원숭이, 자칼 등이 살고 있다. 


서식 환경의 악화와 밀렵의 이유로 이들 야생동물은 주로 국립 공원이나 보호 구역, 그리고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네팔 서부에서 볼 수 있다. 


* 소망의집 주위에는 야간에 코뿔소와 여우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 


9. 카스트 제도 


 입헌군주제 채택 이후 헌법과 여타 법률에 의해 카스트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내 카스트 의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 


-제1층 브라만(Brahman):  브라만교의 성직자들, 이들만이 경전을 읽고 제의를 지냄 


-제2층 크샤트리아(Kshatrya): 왕, 무사, 귀족 


-제3층 바이샤(Vaisya): 농민 상인 등의 일반 평민 


-제4층 수드라(Sudra): 노예/노비 


10. 경제 


 네팔은 대체로 농업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체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중국· 인도· 독일· 미국· 캐나다· 스위스 및 국제기구의 원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 만큼 빨리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네팔은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농사를 짓지만 식량 공급과 수요의 혼란으로 주요 산업은 임업이다.

 통나무 원목 벌채가 주종을 이루는데, 이들 원목은 거의 연료로 쓰여 네팔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대부분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나무를 연료로 쓴 결과, 숲이 파괴되면서 심각한 침식현상이 일어났다. 


 거의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석탄(갈탄)· 구리· 마그네사이트· 코발트· 철광산이 매장되어 있다. 

카트만두 가까운 곳에서는 운모가 채굴된다. 

광업 부문은 GNP의 4%, 전 노동력의 1% 미만을 차지하는 정도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국내 원자재 사용을 늘리려는 노력이 정부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제조업은 면의류, 벽돌· 타일· 제지· 건설자재· 가공식품 산업이며 바구니· 식용유· 면직문 같은 전통제품은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고 있다. 


건설은 GNP에서 6%정도를 차지하며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업은 GNP의 1/5를 차지한다. 

주요 외화 획득원 으로서 관광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1인당 전기 소비량은 대부분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며 전력 공급은 도시 지역에서도 상당히 제한되고 있다.


 네팔의 해외무역은 인도가 관활하며 네팔은 제한된 운송권 만을 갖고 있다. 

자본과 소비재 상품, 광물 연료, 화학제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11. 정치 


- 통치형태: 민주공화정 


- 국왕: 갸넨드라 국왕 하야 (2006년)후 공백 


- 수상: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Girija Prasad Koirala) 


- 정부의 형태: 의원내각제 (상,하 양원제) 


  * 군대는 국민의 군대가 아닌 왕의 사병 



Religion of Nepal (네팔의 종교) 


헌법상 국교는 힌두교.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다가 최근 국왕 피살 이후 완화되는 추세이다. 


1981년~ 1982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네팔 전체 인구의 80%가 힌두교이고, 불교 15%, 무슬림 3%, 기타 종교 2%로 조사되었는데 그중 기타 종교 속에 기독교가 포함된다. 


그러나 최근의 인터넷 백과사전 정보에 의하면 힌두교 86%, 불교 8%, 이슬람 4%, 기타 종교가 2%로 나와 있다. 

그러기에 네팔의 종교를 이해하려면 먼저 힌두교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1. 힌두교의 정의 


  힌두교는 BC 3천년 경에 발생한 인더스문명에 뿌리를 두고 오랫동안 이도지역 전역의 종교와 문화가 혼재되어 발달된 종교로, 창시자가 없고 교리와 경전 또한 뚜렷이 말하기가 곤란하다. 


다만 여러 시대의 종교적 관행과 예배 의식, 그리고 교리들이 집대성 되어 있을 뿐이다. 

수많은 신화와 민담, 주술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방대하며 ‘힌두교의 신은 3억 3천’ 이란 말이 있듯이 모두 범신론자들이다.

 모든 종교를 힌두교식으로 흡수한다. 


2. 힌두교의 3신 


힌두의 신은 무수히 많지만 잘 정리해 보면 크게 세 유형의 신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 


1). 브라흐마: 창조의 신. 그의 부인과의 결합에서 세상 만물이 창조 


2). 비슈누: 창조 된 모든 것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신. 


  ‘모든 곳에 다 스며있는 자‘ 란 뜻. 시공을 초월하여 어떤 형태로든 어떤 장소이든 개입하여 화현(化現)하는데 이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석가나 과거 영웅이나 전설속의 인물도 비슈누신이 된다. 


3) 시바 : 파괴의 신. 


  윤회(輪廻)사상에 입각하여 파괴는 곧 창조의 시작인 바 이미 끝나버린 창조의 신보다 더 인기가 많아 섬기는 신도가 제일 많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열병을 가져오기도 하는 무서운 신이지만, 춤과 음악을 즐기며 이를 관장하고, 고행자에게는 은혜를 베풀며 생식(生殖)을 지배하는 신으로 믿는다. 


3. 힌두교 사상의 특징 


1) 아르타(artha) 


  유익이라는 뜻으로 정치, 전쟁, 그리고 가정과 국가의 번영을 뜻한다.

 그래서 왕들의 정복 전쟁에 관한 묘사나 궁전에서의 호사한 삶, 음악, 춤, 사냥장면 등이 사원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2) 카마(kama) 


  에로스,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은 후손을 낳기 위한 수단이 아닌 ‘카마수트라’에서 지향하는 세련된 삶의 양식으로 의미된다.

 그러다보니 그룹이나 동물과의 에로틱한 장면은 민중에게 사랑받았다.

 많은 동물들을 성스럽게 여기어 신처럼 받들기까지 한다. 


3) 모크샤(moksha) 


  해탈을 뜻한다.

 모든 생명체는 그 영혼이 불멸하며 끝없이 윤회하는데, 전생의 업보에 따라 다른 존재 형태로 계속 옮겨간다고 믿으며

 이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의 목표를 신적인 우주질서(dharma)에 잘 맞게 성취할 수 있도록 행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스트(caste)라고 하는 신분계급이 대표적이다.

 해탈의 방법으로는 환상 속에서 우주의 본질과 자아를 깨닫기 위해 사색이나 명상, 요가를 행하고, 신에 대한 충직한 헌신으로 사원을 건축하고 푸자(의식)를 행하며 선한 업보를 열심히 쌓는 일이다. 


이런 복잡한 구원의 방법으로 의식과 수많은 관습이 생기게 되었고 도덕성은 자랐으나 숙명론으로 네팔의 사회발전에 저해 요인이 되었다. 


4. 네팔의 불교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 흔히들 석가모니가 인도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이곳 네팔에서 태어났다.

 그 탄생지인 룸비니는 불교도들의 성지이다.


 인도왕 아쇼카도 순례를 다녀갔고 신라인 혜초도 다녀갔던 천축(인도)으로의 직행로.

 힌두교와 습합되어 불교사원 내에 힌두사원이, 힌두사원 내에 불상이 있으며 종교, 예식 행사도 힌두교인, 불교인이 함께 참여하고 거행한다. 


5. 오늘날 카트만두 집과 거리 모습 


집집마다 앞마당엔 소형 신전이 있다.

 부엌 또는 방에도 신의 그림 및 신상이, 벽에도 흠을 파서 신상을 놓는다.

 절간의 사천왕상을 떠올리는 형상들은 네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작은 가게, 미용실, 이발소, 식당, 사무실 등 에도 소형 박스 같은 것으로 신전을 만들어 놓고 향을 피우고, 버스 안, 택시 안, 릭샤 안에까지 이동식 신전이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집 문설주에 수십 마리의 뱀과 전갈이 꼬여 있는 그림을 붙여 놓는다.

 넒은 거리에도 사원이나 탑, 신상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골목에도, 시장 거리에도, 지붕에도 심지어는 연못 속에도 신들이 있다.


살아있는 신으로 대접 받는 원숭이, 개,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강가의 가트(화장터)에선 재로 변한 시신이 강으로 흘러들고 그 강에서 사람들은 입안을 헹구고 목욕을 하며 아이들은 시신의 몸에서 일용할 금을 찾는다. 


게다가 왕도 왕비도 그리고 꾸마리라고 하는 어린 소녀도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신이다.

 

현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네팔의 여러 축제 때 마다 몸이 기형인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기형적인 사람들도 의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으로 간주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불구를 신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신들의 교통수단도 신이고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신이 된다. 

각 신마다 복을 주는 부분과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신은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일상 네팔인들의 종교생활 모습 


네팔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종교의 눈을 뜨고 산다.

 아침이나 밤이나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그들의 일상에서 종교란 벗어날 수 없는 끈이다. 

떠난 것도 없고 벗어난 것도 없이 언제나 종교 안에서 산책하는 수행자들이 그들이다. 


어둑한 시간에 그들은 기도(pooja)로 아침을 맞이한다.

 새벽 네시 도심 한복판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교회 종소리도 어느 사원의 종소리도 아닌 푸자 의식에 나선 어느 힌두 교도가 종을 치는 것이다.


 주로 여성이 집집마다 마을마다 마련된 신전에서 행한다. 

이곳에서는 우상(idop)이 좋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에도 신에게 기원할 공간을 따로 만든다. 

그리고 문설주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신을 모신다.


 거리에 문 닫은 가게들이 군데 군데 있는데, 정치가 불안정한 탓이 아니라, 날마다 번갈아 가며 문을 닫고 제각기 푸자를 행하기 때문이다. 


데모가 일어나고 무장한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날아가도 사람들은 무심하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저 만나면 ‘나마스테’라 말한다.

 나마스테란 말의 원래 뜻을 찾아보면 ‘신을 영접 한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인 이익에 집착한다. 

체면이나 정이 많은 우리의 습성으로는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들은 쓸모 없는 것이라도 받지 못한 때는 화를 낸다. 


아이가 태어날 때, 길을 갈 때, 멀리 여행을 떠날 때,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사람을 대할 때에도 철저하게 그들의 종교의식을 관성처럼 따르고 실천한다.


 힌두사원을 지날 때는 누구나, 심지어 운전기사조차 잠시 핸들을 놓고 오른손을 이마와 가슴으로 반복해서 찍으며 기도를 한다.

 예쁜 보자기에 싼 쟁반을 들고 가는 여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사원을 찾는 여인이다. 

이렇게 힌두교는 일정한 형식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마 한 가운데 티카(꽃을 짓이겨 이마에 붙인 표시)를 한다.

 이는 일부 불교도들도 한다. 

네팔에는 이런 많은 신들을 섬기기 위한 축제가 정말 많은데 거의 매달 축제가 있다. 


가장 큰 축제는 9월-10월에 벌어지는 다사인 축제이다. 

이 기간에 학교는 15일 정도 휴강을 하고, 일반회사들도 5일 정도 쉰다.

 어느 날에는신에게 양이나 닭 같은 짐승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행사가 벌어져 온 카트만두 거리는 피바다가 된다. 

모든 굴러다니는 것들(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등)에게 동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리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사원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계속적으로 이 일을 행한다.


 어느 날은 돈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하기 위해 집 밖에서부터 발자국을 그려놓고 하루 종일 불을 밝히는 날도 있는데,

 신이 그 발자국을 따라 금고 앞까지 와서 많은 돈을 놓고 가길 기원하는 것이다. 


극서 오지마을의 한 산모는 전통신앙에 따라 산기가 오자 외양간으로 격리되었고 거기서 아기를 출산하였다. 

외양간 건초더미에서 애를 낳았는데 고기나 생선 등 영양식도 먹으면 안 되는 가운데 11일간을 격리되어야 했다. 

어느 날 뱀에 물려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직 ‘부정한’ 기간 중인 이 여인에게 손을 대면 신이 노한다는 무지한 신앙에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아 마침내 죽고 말았다는 최근의 기사가 있다. 


히말라야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이 있듯이, 그리고 어느 길을 통해서든 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듯이, 구원도 꼭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종교로든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것이 힌두교의 개념이며 그들의 생활이다.

 그래서 이들을 전도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겉으론 쉽게 예수를 믿는 것 같은데 집에 가 보면 많은 우상들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힌두교 비슈누의 화신인 것처럼 예수님도 그 중의 한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도 있다. 


History of Nepal (네팔의 역사)


 현재의 카트만두 분지에는 본래 호수물이 고여 있어서 네팔계곡 으로 불려왔고 나라 이름을 네팔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


 지금 네팔이란 나라는 중국과 인도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끼여 눈치 보면 살아갈 수 밖 에 없는 작은 나라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네팔도 1800년대에 당시 최고의 권력이였던 영국군과도 용맹하게 맞서 싸워 자존심을 지킨 역사도 있었고 

그 뒤 네팔인들의 용맹함을 인정받아 많은 네팔군인들이 영국용병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그들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르카군이다. 


 4세기부터 18세기까지 네팔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현재수도 카투만두지역에서는 15세기부터 토착민족인 네와리(Newari)들이 각자의 왕국을 만들어 살기도 하였다. 


그러상황에서 1700년대 네팔중부에서 발생한 고르카왕조가 일어나 점차 세력을 확장해, 최종적으로 카투만두지역을 차지한 뒤 1769년 네팔역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형성하였다. 

이때 네팔을 통일한 왕이 쁘리티비 나랴얀 샤 이다. 

그는 네팔 역사에 큰 의미를 차지하는 인물이며, 그로부터 샤 왕가는 지금까지 계속 네팔의 국왕으로 이어와 얼마전 물러난 갸넨드라 샤 왕까지 내려왔다. 


 왕가의 통치는 1769년에서 2008년까지 약 240년간 계속되었지만 중간 ‘러너’가문은 네팔역사에 또 다른 중요한 가문이 나온다.

 바로 1846년 정 바둘 러너(Jung Bahadur Rana) 장군이 샤 왕이 통치하던 네팔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스스로 수상을 자칭하며 네팔을 통치했다. 

이때 왕의 자리는 있지만 실질적 권한을 가진 수상을 포함 모든 요직에 ‘러너’가문들이 차지하고  네팔을 통치하기 시작했다(1846-1950). 


1950년 정치단체들의 민주화투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왕정으로 복귀되었지만 현재도 러너들의 네팔내 영향력은 대단하다.

 1846년부터 러너들의 네팔통치가 시작되었지만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민주주의가 들어서면서 네팔 또한 영향을 받았고 인도에서 공부한 많은 지식인들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1951년 드디어 러너통치가 무너지고 다시 왕정이 회복되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했다.

 네팔은 예로부터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었는데, 인도가 독립을 하면서 정치활동이 시작되었고 당시 인도에서 유학하던 네팔사람들이 이러한 정치사상에 영향을 받고 네팔에서 네팔의회(Nepal National Congress)당을 창립하였다.

 이후 NC당을 중심으로 네팔에서도 러너 독재체재에 대한 시위가 계속되었다. 


 당시 허수아비 왕으로 재임했던 트리부반왕은 러너가족들의 감시를 피해 인도대사관으로 잠입했고, 얼마뒤 인도의 도움을 받아 델리로 망명했다. 

이에 당황한 러너가족들은 얼마전 퇴임했던 지넨드라왕(당시어린아이)을 왕으로 임명했지만, 트리부반왕이 망명하고

 NC당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위에 러너들은 권력을 내려놓게 되고 1951년 다시 왕정이 회복됐다. 


얼마 뒤 네팔은 임시헌법을 제정하여 입헌군주제로서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1952년 머헨드라왕이 즉위를 하면서 네팔의 근대사는 시작된다. 


 1962년부터는 뻔차야트(무정당의회)라는 제도를 실시했지만 이후 1990년에 다시 펀차야트가 해산되고 정당제도를 따르도록 헌법이 개정된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 네팔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당, 왕가 그리고 Rana들간 권력다툼이 끊이질 않았고 결과로 네팔은 여전히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만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네팔 전역에는 가난을 이기지 못한 많은 시민들이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공산정부를 새우겠다는 이념을 기초한 게릴라군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10여 년간 정부와 계속해서 투쟁을 한 뒤 현재는 정부에서 가장 많은 의원의석을 가지게 된 반정부 공산주의자 ‘마오이스트’이다. 


 마오이스트가 등장하여 1996년 시민전쟁을 선언한뒤 약 10여년간 네팔에는 마오이스트 게릴라군과 정부군간의 내전이 진행되었다.

 내전기간동안 약 12,800명이 사망(정부군 4,500명, 마오군 8,200명)하고 10만명 이상이 실종되었으며 마침내 2006년 네팔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서 내전이 종식되었다.

 

 내전종식 뒤에도 10여년간 싸워온 마오이스트군과 정부군의 통합문제, 마오이스트들이 몰수한 토지반환 문제등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많이 남아있다.


 네팔의 내전이 진행되는동안 왕의 대한 불신또한 계속 깊어갔고 결국 2006년 마오이스트의 정치참여와 동시에 

왕의 실권이 모두 빼았겼다. 


이후 2008년 6월 네팔은 240년간 이어오던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했으며 국왕이 살던 왕궁은 현재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시대별 네팔 역사 정리


▷BC 7·8세기경 동쪽으로부터 이주 해 온 카리티족. 불교 들어옴. 


* 티벳지역의 토번나라의 송첸캄푸가 7세기경 네팔의 브리쿠니공주와 당태조의 문성공주와 결혼을 하여 중국의 불교가 히말라야를 넘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그러나 티베트 제국이 쇠약해지자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 이슬람교도의 침략에 쫓긴 라지푸트족이 인도로부터 이주해 와 인도의 문화를 받기 시작했고 네와르족이 힌두교로 개종하여 멜라왕조를 건국하고 왕성한 카트만두는 이 때 건설되었다. 


▷3~4세기 불교가 기울면서 북인도에서 쳐들어와 마지막 카리티족 왕을 제거한 릭챠비족에 의해 힌두교가 힘을 얻게 됨.

 이 때, 힌두교와 더불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가 함께 들어왔으며 네팔 예술과 건축의 고전시대를 구축. 


▷897년 릭챠비족의 시대가 끝나면서 타쿠리왕이 들어섰고, 아리테바 왕은 멜라왕조를 세워 네팔 문화의 새로운 대국을 건국. 


▷15세기 독립적인 도시 국가인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등과의 분쟁에도 불구하고 말라왕조는 번성하여 약사 멜라의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 


▷1769년 구르카왕조의 프리트비 나라얀 샤 왕이 멜라 왕족을 정복하여 새 왕조의 기초 마련. 


▷1792년 티벳과 짧은 전쟁에 패하고, 1814년 영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인한 전쟁에 패하고 2년 후, 수골리 조약에 서명.

 이 서명으로 네팔은 시킴과 테라이(1857년 인도의 저항을 진압하는데 네팔이 협력하는 대가로 되찾게 됨)의 대부분을 빼앗겨 현재의 동서 경계를 정하게 됨. 


▷1846년 라나일족의 장군 장바하두르가 군사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고 그 때부터 라나 일족의 세습 재상에 의한 통치가 시작. 장바하두르는 영국과 제휴가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인도의 세포이의 항쟁(1857~1859)때 진압군으로 다수의 구르카 용병을 파견. 


▷1923년 이와 같이 대영협력체제는 그 후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1923년 영국과 새로운 조약이 체결되어 완전독립. 


▷1951년 왕정이 복귀되면서 트리부반와이 왕위에 올라 러너와 새롭게 결성된 정부를 조직. 


▷1960년 마헨드라 국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왕은 수상과 내각을 구성하고 국회의 상당수를 지명하여 단지 도장 찍는 기구로 전락. 


▷1989년 자나안돌라(민중운동)으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 


▷1991년 5월 선거에서 네팔의회당과 공산당이 대부분 득표. 


▷2001년 즉위한 갸넨드라 국왕의 통치하에 국내통일을 도모. 


▷2005년 갸넨드라 국왕은 비상사태를 선포, 정부를 해산하고, 자신이 직접 관장하는 내각구성 


▷2006년 네팔과도정부와 네팔공산반군(Maoist)간 평화협정 서명 


▷2008년 네팔 초대 대통령 네팔국민회의당 람바란 야다브 당선